전승일의 과학융합예술 컬럼 - 85회
기술적 상상력과 창의성의 시대, 21세기 예술은 기술, 인문학, 예술의 삼각 컨소시엄과 융복합을 통해 새로운 생산과 배급 형태가 만들어지고 있다. 가상현실(Virtual Reality),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인공생명(Artificial Life),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 상호작용(Interaction), 융합(Convergence) 등은 이러한 21세기 현대예술 창작의 중요한 키워드이다.
21세기 현대예술의 핵심적 특징을 제시하면서, 1999년 발표된 <텍스트 레인(Text Rain)>은 미국의 미디어 아티스트 카밀 우터백(Camille Utterback)과 이스라엘 출신의 멀티미디어 예술가 로미 아키투브(Romy Achituv)가 공동으로 제작한 인터랙티브 미디어 아트 작품으로, 스크린에 투사된 관객의 움직임에 맞춰 알파벳 문자가 흘러내리거나 이동하면서 반응하여 관객과 함께 움직인다.
상호대화형 설치미술 <Text Rain>에서 관객이 자신의 동작과 함께 체험하는 텍스트 애니메이션은 가변적 조합으로 재구성된 에반 짐로드(Evan Zimroth)의 언어와 신체에 대한 시 <Talk, You>의 알파벳 문자들이며, 1993년에 출간된 시집 <Dead, Dinner, or Naked>에 수록되어 있다. 퀸즈 대학(Queens College)에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에반 짐로드의 1996년 소설 <Gangsters>는 ‘National Jewish Book Award’를 수상했다.
카밀 우터백은 윌리엄스 대학(Williams College)에서 학사 학위를 받았고, 뉴욕 대학교 티쉬 예술학교의 인터랙티브 통신 프로그램(Interactive Telecommunications Program at New York University’s Tisch School of the Arts)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스탠포드 대학교(Stanford University) 미술사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다양한 인터랙티브 미디어 아트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몸에 비가 내리는 시(A Poem That Rains on the Body)’라고 불리는 <Text Rain>의 스크린 앞에서 관객들은 다양한 몸동작으로 반응하며 놀이 하듯이 참여한다. 즉, <Text Rain>이 제시하는 시공간은 컴퓨터 알고리즘과 인간의 몸짓 사이에서 생겨나는 일종의 ‘춤’이라고 할 수 있으며, 디지털 기술은 작품 속에서 끊임없는 동적(動的) 흔적과 라이브 애니메이션을 만들며, 문학과 인간의 동작을 시각적으로 연결한다.
<Text Rain>은 ‘Interval Research Corporation’, ‘The Greenwall Foundation’, 그리고 뉴욕 대학교의 ‘The Interactive Telecommunications Program’의 후원으로 제작되었다.
알렉산더 칼더와 피트 몬드리안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 카밀 우터백은 “나는 관객들이 그들 나름의 방식대로 작품을 ‘즐기고’ 발견하기를 바란다. 나는 작품에서 사람들이 탐색하고 참여할 수 있는 수많은 레이어를 만들려고 노력한다. 작품의 반응과 사람들의 행동 사이에서 새로운 ‘인터랙션’이 만들어진다. 인간과 작품 사이에 작은 ‘춤’이 생겨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 밖의 카밀 우터백의 주요 미디어 아트 작품으로는 ‘Drawing From Life(2001)’, ‘External Measures(2003)’, ‘Abundance(2007)’, ‘Aurora Organ(2009)’, ‘Liquid Time Tenderloin(2009)’, ‘Shifting Time - San Jose(2010)’, ‘Glimpse(2012)’, ‘Fluid Studies(2013)’, ‘Entangled(2015)’, ‘Holding Water(2017)’, ‘Precarious(2018)’, ‘Kiln-formed Glass Screens(2019)’ 등이 있다.
카밀 우터백과 함께 <Text Rain>을 제작한 로미 아키투브는 이스라엘에서 조각과 철학을 공부한 뒤 1989년 뉴욕으로 건너가 NYU(New York University)에서 컴퓨팅, 마이크로프로세스 프로그래밍, 텔레커뮤니케이션, 센서 테크놀로지, 미디어 에디팅 소프트웨어 등을 공부했으며 조각, 사진, 비디오, 인터랙티브 설치미술, 공연예술, 퍼포먼스 등 광범위한 장르에서 활동하며 ‘학제간 예술가(Interdisciplinary Artist)’로 평가받고 있다.
로미 아키투브의 2014년 설치미술 작품 <기억의 흔적(Memory’s Stain)>은 2003년 발생한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에 대한 기억과 추모의 예술적 기념비이며, 역사적 흔적의 시각적 공유이자, 화려한 색상의 스테인드글라스 빛의 집적(集積)을 이용한 성스러운 ‘집짓기’이다. 작품의 문자 색면들은 희생자 192명의 이름과 생년월일, 나이의 조합으로 구성되었다.
<기억의 흔적>은 그가 2007년 이스라엘 게토 파이터스 박물관(Ghetto Fighters Museum)의 기억의 전당을 위해 진행한 <Lost Communities Installation> 비디오 설치 프로젝트의 연장선에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유태인들의 저항을 기념하고, 홀로코스트의 비극을 상기시키는 애니메이션 비디오 설치미술로서 유태인들이 살았던 4500개의 커뮤니티 이름이 중층적으로 스크린에 나타난다.
로미 아키투브는 홍익대학교에서 디지털미디어 디자인 전공 교수를 지냈으며, 미디어시티 서울과 광주 비엔날레에 초대되었고, 2014년 ‘기억의 흔적’이라는 제목으로 대구 봉산문화회관에서 개인전을 개최하였다. 그리고 그는 NGO 단체 ARTEAM의 맴버로 텔아비브(Tel Aviv)에 이주 노동자와 난민들을 위한 가든 도서관 설립에 참여하였다.